정토사 유심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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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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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1-11-01 13:40:10 조회수 451

이명환

 

“물속의 수초처럼 자연스럽게 흔들흔들 하면서 서 있습니다. 마음이 맑으므로 그 모습이 공손합니다. 아득한 허공으로 의념을 띄우니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온 몸이 녹아내리듯 편안하고 고요합니다.”

강원도 삼척 어느 산골짝 유심선원(唯心禪院)에서 하루를 여는 아침 수련 ‘봉기관정’ 시작 멘트다. 지척에 웬만한 강폭의 큰 시냇물이 낭랑한 소리를 내면서 흐르고, 각종 새와 풀벌레의 노래가 끊이지 않는 한적한 마을이다.

한 달 작정하고 이곳에 온 지도 어언 28일이 됐다.

“팔을 뻗어 허공(虛空)으로 밀며 허공 생각, 팔을 당기며 체내(體內) 생각.”

아침 점심 저녁 각각 다른 난이도의 수련이 시작될 때마다 일관되게 듣게 되는 준비운동 격의 구호다.

그 허공이 첫날에는 우리 아파트 11층에서 바라보이는 가까운 하늘이다가, 요새는 수만 년 전 아득한 태초의 공간에 허무일기(虛無一氣)가 떠돌며 내 마음 한 자락을 받아주는 무애(無礙)의 허공이 되기도 한다. 뜻밖에 거기서 수십 년 전 내가 태어날 무렵의 천지기운을 은연중에 감지하기도 한다.

할머니는 내게 8월 초열흘 한가위 무렵 아침 해가 막 뜨려고 하는 진시(辰時)에 충남 당진 상거리 집에서 산 구완하는 이와 함께 나를 받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아버지가 일본에 계셨으므로 서울 필운동 집에서 시골 할머니한테 내려와 어머니가 몸을 풀었다고. 오빠가 있었으나 내가 셋째로 또 딸이어서 모두 섭섭해 하셨다고.

“허---공---- 체내---, 허---공---- 체내---, 허---공----체내---”

여기서는 무슨 구호든지 삼 세 번이다. 한 음 한 음을 20초 이상 끌 때 메아리처럼 밀려오는 저 허공은, 날이 갈수록 색다른 세계로 나를 데려다준다. 완전히 잊고 있던 빛바랜 사진첩일 때도 있고 꿈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한 시간 속일 때도 있다.

“온 몸을 이완합니다. 머리 이완, 양 미간 이완, 얼굴 이완, 웃는 듯 마는 듯 미소 짓습니다. 목 이완, 양 어깨, 팔, 손목, 손바닥, 손등, 손가락 하나하나 이완합니다. 가슴, 등. 허벅지, 무릎, 종아리, 발목, 발바닥, 발등, 발가락 하나하나 이완합니다. 이----와아안----. 우리 몸이 조금씩 흔들거립니다. 물속의 수초처럼 자연스럽게 흔들흔들, 목 아래 신주혈(身柱穴)로부터 우리 몸이 점차로 불어나 온 허공을 가득 채웁니다. 우리 몸과 대자연이 융화하여 하나가 됩니다. 하단전에 기운이 충마아--안합니다. 배꼽 속 몸통 중심 하단전을 눈으로 봅니다. 귀로 듣습니다. 마음으로 배꼽 속 몸통 중심 하단전을 생각합니다.”

오늘도 나의 하단전에는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고 아무 생각도 머무르지 않는구나.

정식 수행 시작 전에 매번 1시간 이상 집중 호흡으로 심신을 정화한다. 그냥 무심히 하던 호흡인데 자리 잡고 앉아 눈을 감고 공들여, 날숨 때마다 검지를 바꿔 콧구멍을 막으면서 숨을 몰아쉬니, 이 숨결이 내 몸 구석구석을 돌며 청소하는 듯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몸은 바르게 아래턱을 당기고 뺨을 이완한다. 척추를 바로 세우고 아랫배는 거두어들인다. 회음도 가볍게 당긴다. 반듯하게 앉아서 해도 되지만 허리 아니 골반을 돌리면서 하면 음양이 조화되고 폐활량이 증가하며 내장 맛사지 등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처음에는 한 시간 버티기가 힘들어 중간에 내 방으로 와서 눕곤 했다. 누워서도 집게손가락으로 이쪽저쪽 코를 막으며 흡(吸) 호(呼)를 해보니 졸음이 달아나고 차츰 정신이 나네. 하나 30분 이상 이러고 있자니 무료하여 엊저녁 내내 유튜브에서 수면음악으로 듣던 ‘달빛’, ‘아라베스크’ 등을 곁들여 봤더니, 내 숨결과 엮이면서 색다른 세계로 나를 이끈다. 드비시 월탄(月灘)의 리듬과 들숨 날숨이 천생연분이구나.

왠지 나는 이 프랑스 작곡가의 달빛에서 늘 달그림자를 담고 흐르는 여울물 월탄을 본다 월탄을 듣는다. 이렇게 좋은 음악은 우리의 내면을 풍요롭게 해줄 뿐만 아니라 살면서 생긴 마음의 빚이나 매듭을 풀어주기도 하고, 슬픔을 삭이는 데도 한몫을 한다. 소리와 마찬가지로 숨결도 리듬을 타야 제격이지. 호흡은 심세균장(深細均長) 해야 한다지만 이것 역시 바닷속에 뿌리내린 부초(浮草)처럼 자연스레 리듬에 실리면 저절로 깊고 가늘고 균일하고 길어져 우리의 목표인 입정(入靜)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여기서 문득 <리듬 인생>이라는 남편 성찬경의 시가 생각난다. 내용이 뭐였더라?

 

인생은 리듬./ 리듬만 타면야 리듬만 타면야/

쓴 맛도 단 맛. 재미나게 도도 닦아./ 랄랄라 랄랄라 리듬 인생 즐거워.

 

호숩고 재미나는 리듬 발명하면 천재./ 리듬 잘 타면 삶의 달인./

리듬의 두목은 우리의 호흡./ 리듬 자동장치 타면 백리 길도 멀지 않아.

........

리듬은 순환운동./ 영원 가는 비밀 통로./

리듬 리듬 리듬 리듬 리듬 인생 즐거워.

 

한두 줄 인용하려 했는데 ‘리듬의 두목이 우리의 호흡’이라는 놀라운 구절 때문에 길어졌다. 그러니까 저세상으로 떠나기 아주 오래 전에 송운(松韻-남편의 호)은 우리의 육신과 정신을 이끄는 호흡을 리듬의 두목으로 받들었구나. 호숩고 재미나는 리듬에 실으면 인생의 쓴맛도 단맛이 되고 도 닦는 일도 놀이처럼 할 수 있단 말이지. 예지(叡智)넘치는 시인이로고!

수행법에는 네 가지가 있다. 행(行), 참(站), 좌(坐), 와(臥). 좌와 와는 내장 기능 회복에 좋고 서서 하는 참장은 진기(眞氣)의 발동이 빨라 몸 전체의 기능이 좋아진다. 앉아서 하는 수행보다 눕거나 서서 하는 수행을 나는 선호한다. 오래 앉아 있으면 눕고 싶어지는 나쁜 버릇 때문이다. 어려서도 눕기를 좋아했던지 할머니는 나더러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가 된다고 하시더니.

이곳은 나처럼 무질서한 생활습관과 식탐으로 당뇨나 콜레스테롤 약을 장복하는 과체중인 사람도 있지만 중환자들도 많다. 폐암4기 전직 교수와 말기 담도암 위암 환자인 날씬한 여자 둘은 매일 다섯 시간씩 걷는 수행 소요보(逍遙步)를 한다. 이는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서 차용해온 명칭일 것이다. 장주(莊周)의 소요란 놀이삼아 발 가는 대로 거닌다는 뜻일 터인데 이는 중환자들을 독려하는 고단수 수행 방법으로 보인다. 무서운 병마와의 장기전투에서 승리하려면 놀이에 빠져들듯 재미나고 느긋하게 상대할 수밖에 없겠지. 20분 정도 지나면 트림과 방귀가 시작되고 차츰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으로 열이 난다 하니 놀이 치고는 무서운 놀이다.

오른발이 나가면서 몸을 오른쪽으로 틀며 호흡을 두 번 연거푸 깊이 마시고 곧바로 왼쪽으로 틀면서 한 번에 확 내쉰다. 팔은 손바닥을 아래로 향한 채 허리띠 높이에서 수평으로 움직이고 시선은 아득히 먼 허공에, 걸음은 발뒤꿈치부터 땅에 닿도록 일자로 걷는다. 종양을 공격하는 데는 산소만한 무기가 없다한다. 연거푸 들숨 두 번을 할 때는 슉슉 쇳소리가 난다. 종양에 대고 쏘는 산소 총 같다.

75세 김 교수는 대학에 있을 때 학장 등 여러 보직(補職)을 맡으면서 사람들한테 시달리느라 폐암에 걸린 줄도 몰랐다 하네. 비가 오나 땡볕에나 항상 팔을 저으며 소요보 하는 이들을 따라 나도 잠시 일사불란하게 슉슉 흡(吸)할 때면 내가 마시는 산소를 모았다가 그 쪽 종양을 향해 쏘는 상상도 해본다. 종교를 강요하는 곳은 아니지만 대승불교 선원(禪院)이다 보니 발보리심(發菩提心)이니 중생의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입에 달고 지낸다. 어휘만 다를 뿐이지 예수님께서도 가난하고 병든 소외된 이들을 돌보셨고 그렇게 하라 우리에게 가르치셨지. 김 교수는 이곳에서 두 달간 격렬한 수련을 마치고 정기 검진 받으러 서울로 떠났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나의 미약한 기운으로나마 먼 허공에 대고 염원해본다.

앞에 서서 대공(帶功) 하는 스님의 동작을 보지 않고도 이제는 구령에 맞춰 대충 따라 하다 보니, 이 행법이 단순한 선방(禪房)의 체조가 아니라 한편의 완성된 예술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공부 삼아 제1보공(步功)인 봉기관정법 (捧氣貫頂法)을 살펴본다.

봉기란 대자연의 혼원기(混元氣)-두 가지 이상의 요소가 하나로 모여 있는 기-를 손으로 받들어 올린다는 의미이고, 관정은 받들어 올린 기운을 정수리로 관통시켜 전신 구석구석으로 퍼지게 한다는 뜻이다.

행법: 자세. 두 발을 모으고 몸을 바르게 한다. 겨드랑이 비우고 두 팔은 자연스럽게 내린다. 두 눈을 뜨고 전방으로 하늘과 땅이 교차하는 먼 곳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감는다. 이때 수련자들을 몰입과정으로 이끄는 팔구구결(八句口訣)을 법문(法門)하는데 이는 모든 행법의 지침이면서 동시에 요약으로 보인다.

頂天立地 (정천입지) -정수리는 하늘로 두 발은 지하로 연결합니다

形松意充 (형송의충) -온 몸을 이완하고 의념으로 허공을 가득 채웁니다

外敬內靜 (외경내정) -밖으로 공경하고 안으로는 고요합니다

心澄貌恭 (심징모공) -마음은 맑고 모습이 공손합니다

一念不起 (일념불기)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神注太空 (신주태공) -정신을 아득한 허공에 가득 채웁니다

神意照體 (신의조체) -정신이 이 몸을 비춥니다

周身融融 (주신융융) -온몸이 녹아내리듯 편안하고 시원합니다.

 

나는 첫날부터 이 팔구구결에 관심이 있어 시간 들여 외워보니, 한시처럼 운이 딱딱 맞아서 그런지 암송하기도 쉽고 내용이 눈에 보이듯 선하여 흥미를 더한다. 계속 밀고 당기느라 어깨가 뻣뻣하니 아플 때 형송의충을 뇌면서 풀고, 조금 여유로워 리듬을 탈 때 심징모공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미소 짓는다.

천지인(天地人)의 ‘삼재식(三才式)’인 기식(起式)을 거쳐 이어지는 1, 2, 3, 식과 끝마무리 수식(收式)도 결국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에 관기(貫氣)하기 위해 두 팔을 부드럽게 앞으로 옆으로 위로 밀면서 저 멀리 천변(天邊)생각 당기면서 체내(體內)생각 하는 반복 수련이다.

제 1식, 가슴 앞에서 합장하는 합십수(合十手) 자세에서 손가락 끝을 앞으로 쭉 밀어 두 팔을 어깨 높이까지 뻗는다. 합장한 손을 새끼손가락부터 벌려 검지와 엄지로 삼각형 만들고 잠시 후 양손 손가락 모두 차례로 떼고 앞으로 밀면서 저 멀리 허공 생각 당기면서 체내 생각. 어깨와 일 자 선에서 안으로 반동주어 좌우로 밀면서 저 멀리 천변생각- 당기면서 체내 생각-, 하단전으로 내려온 손을 몸통 뒤 명문혈(命門穴) 누른 후 무릎 조금 구부리면서 양손 뒤로 내려가 발가락 위에 손가락 포개고 앉으면서 저 멀리 지하 허공 생각- 일어서면서 체내생각, 발등에서 앞으로 죽 하단전을 향해 올라간다.

제 2식, 두 팔을 지하 허공 기운 모아 양옆으로 들어 올리다가 어깨와 일자선에서 손목을 위로 꺾고 좌우로 밀면서 저 멀리 천변 생각- 당기면서 체내 생각, 두 손을 먼 하늘 허공 끝까지 뻗은 다음 한 호흡 쉬면서 관정. 정수리 거쳐 상단전 인당혈(印堂穴) 찍고 뒤통수를 향해 수평으로 선을 그으면서 옥침골(玉枕骨) 지나 척추의 신주혈(身柱穴)에 도달, 손을 다시 몸 앞으로 가져와 겨드랑이 뒤로 향한다. 최대한 위로 올린 두 손으로 명문혈 찍고 대맥을 따라 배꼽으로 돌아와 양기. 두 손을 양 옆으로 내린다.

제 3식, 두 팔을 전방 45도로 벌려 들어 올릴 때 대추씨 모양으로 쭉 올라간다. 정수리에서 하늘의 기운모아 관정- 백회에서 두 손 옆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다가 가슴 앞에서 멈추고 손바닥은 정면을 향한다. 오른 손을 저 멀리 전방을 향해 뻗은 다음 천변의 기운 모아 손바닥 세울 때, 마치 다섯 기둥이 허공 끝에서 쓰러지는 것처럼 손가락을 꺾어 손목을 세우고, 허리를 이용하여 상체를 돌린다. 왼쪽으로 몸통 틀어 90도에서 엄지손톱으로 중지의 중괴혈(中魁穴) 찍은 채, 왼쪽 어깨 뒤선 타고 내려와 빗장뼈 아래 기호혈(氣戶穴) 누른다. 이어 왼 손바닥도 반대로 틀어서 중괴혈 찍은 채 오른쪽 어깨를 타고 내려와 빗장뼈 아래 기호혈 누르면서 ‘호오옹’ 세 번 소리 낸다. 기호혈 누를 때 위팔이 상체에 붙지 않고 가슴에 십자를 만든다.

봉기관정의 피날레인 이 동작에 이르면, 나는 그 동안에 내가 겪은 모든 어려움과 어리석음을 쫙 편 좌 우 손바닥에 담아 멀리 허공으로 밀어 날려 보낸다. ‘다섯 기둥이 쓰러지듯’ 하면서 손목을 꺾은 그 자리에서 나는 천변의 기운모아 오른 손은 왼쪽, 왼 손은 오른쪽 기호혈 누르며 세 번 호오옹 할 때 괜히 목이 메어, 소리를 못 내고 주위의 울림에만 귀 기울일 때도 있다. 두 팔 가슴 앞에서 손가락 벌려 연화장(蓮花掌) 만들고 천천히 합십수 자세를 취한다.

수식(收式), 합십수를 머리 위쪽으로 뽑아 올릴 때 마치 두 손이 하늘과 접촉하고 그 하늘을 둘로 나누는 것처럼 한다. 두 손이 허공을 따라 양 옆으로 내려와 손바닥은 정면을 향한 채 막을 내리듯 서서히 내린다. 두 팔이 어깨와 나란히 될 때 조용히 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허공 끝을 따라 앞으로 모아 어깨너비까지 도달한다.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경건하게 봉기한 다음 손목을 돌려 두 손 마주하면서 배꼽 위에 포갠다. 양기(養氣)- “하단전에 기운이 충마아--안합니다.” 배꼽 속 몸통 중심 하단전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배꼽 속 몸통 중심 하단전을 생각하면서, 두 손을 나누어 몸 옆으로 내리고 두 눈을 아주 천천히 뜬다. 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복중이라 한증탕에서 나온 느낌이다.

땀에 젖은 탈진한 몸인데 온몸이 두루 녹아내리듯 시원하구나. 이렇게 서서 쉬다가 어느 날 잦아들 듯 아득한 허공 속으로 사라지는 내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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