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토사 유심선원

jungtosa image

 

수행 일기

게시판 상세보기
작성일 2021-11-01 14:15:54 조회수 422

나는 끊임없이 현실과 타협하는 삶을 살았다.

어떤 삶을 살기 위해서 끝없이 타협하며 살았는가?​

내 행복과 건강을 위해서도 아니고 타인의 행복과 봉헌하는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닌 떠밀려오는 뗏목처럼 살았다. 현실을 외면하지 못해 처사와 자식과 직원들에게 가족들에게 휘말리면서 살았다.​

수용하고 포용하지도 못하고 이용하지도 못했다.
포용하기엔 나의 마음 그릇이 작았고 인연을 이용하기엔 어려서부터 배운 도덕과 양심에 걸렸다.

나의 양심을 거스를 수 없었고 주위의 현실을 외면하기에는 배포와 용기가 없었고 배워온 사람의 도리에 또 걸렸다.
이 모순과 도리와 심리 사이에서 나의 삶과 건강과 행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스승님을 만나고 나의 의식과 건강과 삶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2020년 일기 중 하루의 일기이다.
내일 채공 마지막 날이다. 이 팀과 함께 다음 한 번의 채공 소임이 남았다.

솔직히 내 마음을 표현한다면 00스님과 다시 채공 소임을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어떤 틀에 맞춰 음식을 하는 것이 아니고 식재료와 그 때 그 때 상황에 떠오르는 데로 원칙 없이 만드는 스타일이다.

00스님은 당신의 싫고 좋은 생각에 따라 재료도 선택하고 음식의 양이나 스타일을 고집하신다.
내가 00스님의 참견을 힘들어하면 00스님도 나의 자유로운 스타일을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를 나처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치로 이해하는데 가슴에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00보살에게 자자처럼 내 생각과 감정을 말했지만, 양설 하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소아와의 싸움을 표현한 것 같다.
각양각색의 성격과 인품과 스타일을 만나는 것이 사람의 관계이고 사회생활이다.

같은 뜻을 갖고 수행하는 도반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소아를 방하하지 못하면 어디서 안정된 나를 찾겠는가? 어떻게 건강하고 행복한 자유를 누릴 수 있으랴!​

'안으로 고요합니다. ‘를 수 없이 되뇌어 본다. 공성증득 후에나 실천할 수 있으려나?

얼마나 가야 하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 뜻대로 하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정직하고 진실한가?
다른 사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직도 기대하고 원망하고 있는가? 그동안 회피했던 감정을 책임감 있게 표현하는가?
내 안의 나에게, 또 하나의 나에게 묻고 묻는다.

반복되는 습관과 성격을 얼마나 그리고 빨리 자각하는가?
갈 길이 멀고도 멀다.
게으름과 자만심이야 말로 해결해야 하는 급한 불이다.

2012년 처음 스승님을 만나 이 수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정확히 2012년 7월 29일부터 반응이 시작되었다.
‘7월 29일 처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아프다는 핑계로 000로 향한다.
00은 처사의 마음을 헤아려 안 갔으면 하는 눈치이고 00는 갔다 오라고 도와준다.

7월 31일 힘든 기억을 남긴 모든 인연에 대한 마음을 다 내려놓고,
기회가 될 수 있으면 이 몸 뚱아리를 끌고 다니는 주인공을 꼭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 밤 달이 참 크고 곱다.
처사가 내게 청혼하던 날에 밝고 큰 보름달이 떠오르게 하는 달이구나.
이 인연들도 바람처럼 구름처럼 흘러가리라.


8월 2일
수업이 있어 청주에 다녀와야 한다.
몸에 두드러기처럼 이상한 반점들이 하나 둘 나오더니 온몸으로 뒤덮여졌다.
청주에 가서 수업만 하고 처사 모르게 다시 000로 향한다.
두드러기 반응은 작게 크게 머리부터 발바닥, 손바닥까지 다 나타났다.
손바닥 발바닥은 벌겋게 부어올라 손가락은 접히지 않고 발은 부어 신발을 신을 수 없었다.
처사가 나의 몸 상태를 알아야 할 것 같아 휴대전화로 사진을 보냈다.
처사는 사진 속 나의 몸 상태를 보고 당장 집으로 돌아오라고 소리를 쳤다.
처사의 뜻과 달리 나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편안했다.​

여기 계신 스님들께서 수시로 나를 생각해주시고, 000 보살님의 간호를 받으면 좋겠지만, 나의 몸 상태를 안 이상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집안의 소란을 잠재우는 길임을 알기에 병든 몸을 이끌고 청주로 향했다.
도착한 집은 그곳보다 기온이 4~5도 높았다. 높은 기온으로 인해 나의 몸의 두드러기는 한층 더 기승을 부렸다.

두드러기 가려움증이 나의 인내심과 나의 삶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듯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대안으로 내가 택한 것은 사혈 침을 써서 피를 내는 것이었다.

​사혈 침이 가려움증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이었기에 한동안 계속 사혈 침 치료는 이어졌다.
어느 밤 도반과 0000보살이 집에 들렀다. 00보살님이 약국에 가서 얼른 증류수를 있는 대로 사 오라 시켰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체 00보살께서 이불 위에 증류수로 샤워를 시켜주었다.​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은 것인지, 잠이 든 것인지, 새벽녘이 되어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이후 0000보살님 얘기에 의하면 그 당시 나의 모습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이었으며, 온몸은 벌겋게 달아있는 인두 같았다고 했다. 증류수를 몸에 붓기 위해 대형수건으로 온몸을 감싸고, 그 위에 증류수를 붓자 얼마 지나지 않아 버쩍버쩍 수건이 말라버렸다.
간신히 위기를 넘긴 다음날, 000으로 가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선 00종합병원을 추천했다.병원에서 소견서를 들고 나는 00종합병원으로 향했다.


​8월 6일​
000보살이 수액을 놓아주면 엄마 젖 물은 갓난아이처럼 잠이 들 수 있었다. 낮에는 마당 한쪽에 있는 긴 의자에 누워 8월에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몸과 마음도 스르륵 잠이 들곤 했다.
​​

8월 9일​
이날도 몸 상태는 엉망진창.
그런데 처사가 나와 상의도 없이
노후자금으로 사용하려고 가입한 보험과
우체국에 가입한 보험까지 다 해지를 해버렸다.
화가 치밀어 올라온다.


8월 12일
청주 집으로 내려가는 길 자꾸 졸린다.
졸리면 그냥 잔다. 하염없이 잔다.
먹는 것은 뒷전.
먹는 욕구가 일어나지 않는다.
자꾸만 처지고 움직이기 싫다. 다 귀찮고 힘들다.


8월 15일
다시 000로 돌아왔다.
절로 돌아온 내 몸을 본 스님께서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정상으로 돌아온 나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흉한 모습이 우습기도 하나보다.
이젠 제법 말문이 트인 것을 보니 신기하고 대견스럽단다.


8월 17일​
000 하늘에 떠 있던 별들도 자취를 감추고 비가 세차게 내린다. 이제 많이 회복되었다.
의식도 회복되고 생기가 생긴다.

2011년 가을에 스승님과 인연이 시작되어
2012년부터 수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나타난 몸의 반응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몰골의 상태였다.
그러나 이 반응은 시작에 불과 한 것이었다.
스승님은 대구에서 처음 뵙고
2012년부터 000에서 시작된 혼원정체수행을 하면서
2014년 삼척으로 이전하고
2015년부터 범진스님의 혼원정체론책을 번역하는 것과
강의를 하기 이전까지는 조장, 정리, 호흡, 행선을 무조건 따라했다.

​20대부터 접한 불교와는 다른 이 수행법이
000 신도로서 나에게 이롭다는 생각으로 맹목적으로 따라했다.

2012년 반응을 시작으로 내게 필요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했지만,
내 체력으로는 이 수행을 모두 따라 하기는 힘들었다.

처음 이 수행을 할 때 교번호흡을 하는 데 숨이 막혀
두 번 하는 것도 내겐 무리였고, 따로 시간 내어 수행할 시간적 여유와 심적 여유가 없었다.


잠자리 들기 전 45도 각도로 누워서 하다가 잠이 드는 정도였고
새벽 2~3시면 구토가 시작되는 반응은 한 1년 정도 지속되었다.

약을 먹으면서 생기는 퉁퉁 몸이 붓는 부작용도 여의치 않았다.
00 스님, 00 스님과 함께 인도 불교성지와 히말라야를 가려는 용기를 냈던 것도
​어쩌면 나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나름의 내 판단이 섰기 때문이기도 하다.
히말라야를 다녀온 후 몸 상태는 더욱 좋아진 것 같다.

2013년에 허리디스크 증상과 무릎 관절염 증상으로 힘들 때 준장을
2회. 3회. 5회, 10회, 20회, 50회, 100회, 200회, 300회로 늘렸고


2014년
고관절로 고생할 때는 형신장 6절과 처음 시작한 폐관수행의 호관으로 극복했고,
2015년 목 디스크와 갑상선, 염증은 아침에 눈을 뜨면 학수를 두 시간 정도씩 하면서 극복해나갔다.
​몸 구석구석 나타나는 붉은 반점은 작게 크게 거의 10년 이상 반복적으로 나타났고
자궁의 반응은 타인들에게 표현 할 수가 없을 만큼 고통의 연속이었다.​
2018년부터 시작된 땀은 그동안 한여름에도 흘리지 않던 땀을
다 배출한 것인가 할 정도로 2년 정도 지속되었다.
​등에 옷이 하얗게 소금기가 절일 정도로 땀이 흘렀고, 땀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나니, 10년 이상 하던 요실금 증상과 염증 피고름도 놀랍게도 멈췄있었다.
​그때 내가 느낀 나의 신체에 대한 신비함과 기적 같은 변화를 보고
느낀 환희심을 어떻게 말로 표현 할 수 있으랴!

2013년부터 처사의 경제적 압박과 요구가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저축해 놓은 여유 자금을
빼가고 대출까지 요구하더니
갈등은 더욱더 표면적으로 표출하게 되고 여러가지의
요인이 되어 애들까지 고통 속으로 끌어들이는 결과까지 되었다.​
그 고통을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원망심과 분노가 나를 치기 시작했다.
그 원망심과 분노는
2018년부터 심장에 불을 담고 있는 듯이 타고
그 불을 해결하지 못해 00스님께 죽을 것 같다고 도움을 요청했다.

마음속으로는 중국에 가 계신 스승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다.
2016년 오른쪽 견갑골 자리에 대상포진이 왔을 때 숨을 쉴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없어, 간절히 간절히 스승님의 구결에 매달리며 그렇게 몸부림을 쳤다.
정서와 몸이 하나로 반응하는 나의 모습을 실제 체험할 수 있었다.​

2017년 기심으로 일주일 동안 똥물 같은 노란 물을 토해내며 죽기 직전까지 갔던
그 경험을 떠올리면 정말 수행이 무섭게 느껴진다.

2019년 심장에
불덩이를 안고 있는 것 같은 반응과 대상포진을 또 한 번 겪고, 이제 큰 고비는 다 넘겼나 보다하고 자신감이 생겼다.
그 덕분에 2019년 말부터 2020년 초까지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여행도 한 달 이상 다녀왔고 이번에는 한라산도 혼자서 다녀오는 용기도 생겼다.

나의 성격이 변화하는 과정의 시작인 것 같다.
몸의 반응이 다 끝나지는 않았다.

​나의 정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정서와 몸은 하나로 혼연일체인 관계로,
2021년 사회생활을 하는 중에도 골반 아래로 자궁과 항문을 포함해 두드러기 반응을 혹독하게 치뤘다.

​호르몬 이상과 부정맥으로 오장이 모두 손상된 상태의
몸 상태로 말초신경 증후군으로 정상적이지 못한 몸이였던걸 기억하면 대중들이 놀랄 것 이다.

이 수행을 하는 도반이나 인연이 되기 전인 분들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나의 수행과정에서 나타났던 몸의 반응을 중심으로 적어보았다.

댓글1

  • 정원
    2021-11-13 12:02:53

    잘봤습니다,ㅎ

이전 다음 글보기
이전글 희망을 만나다.
다음글 자자自姿